기다란 선 없이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무선인터넷처럼, 물리적 연결 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의 무선 네트워크가 밝혀졌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분자생물학 연구소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에서 신경세포 간 무선 통신 연결 지도를 완성했다고 지난 11월 국제학술지 ‘뉴런(Neuron)’에 발표했다. 다양한 신경정신 질환의 메커니즘 규명에 한 발 더 다가설 것으로 기대된다. 신경세포가 통신하는 방법 신경세포(뉴런)는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통신한다. 하나는 뉴런이 시냅스로 물리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뉴런에 포함된 ‘신경펩티드’를 통해 서로 떨어져 있는 뉴런이 무선 통신을 하는 방식이다. 뇌와 뉴런의 활동에 의해 행동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 뇌과학의 큰 연구 주제 중 하나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시냅스를 기반으로 뇌 지도를 그리려는 연구는 많이 진행되고 있다. 시냅스가 뉴런 간 통신의 유일한 수단이 아님에도, 신경펩티드의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신경펩티드는 모든 신경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분, 식욕, 성욕, 학습 및 기억, 중독 등을 신경계 전반에 걸쳐 기능하며, 호르몬으로서 다른 조직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옥시토신은 부모와 자녀의 유대감에 영향을 미치는 뇌 회로에 작용하고, 분만 중 자궁 근육 수축을 유발한다. 연구진은 길이 1mm 내외의 토양 벌레인 예쁜 꼬마선충에서 무선 신경망 네트워크를 규명했다. 예쁜꼬마선충은 다른 동물들과 많은 생물학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어 실험 동물로 널리 사용된다. ⓒFlickr 이 때문에 신경펩티드와 그 수용체는 신경 활성 약물의 주요 타깃이 외기도 한다. 예컨대, 비만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위고비(Wegovy)는 GLP-1 펩티드 수용체를 표적하는 약물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된 펩티드 수용체를 표적하는 약물을 50여 가지가 있지만, 신경펩티드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이들 약물이 뇌의 네트워크 수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명확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윌리엄 셰퍼 MRC 분자생물학연구소 박사는 “신경펩티드로 활성화되는 무선 신경망(neural network) 지도를 구축하는 아이디어는 우리 연구진의 오랜 목표 중 하나였는데, 인재와 자원이 결합한 덕분에 드디어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쁜꼬마선충의 무선 신경망 연구진은 생물학 연구에 자주 쓰이는 모델 동물인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예쁜꼬마선충은 302개의 뉴런과 2,300여 개의 시냅스 연결이 있는 길이 1mm 내외의 토양 벌레다.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의 49종의 신경펩티드와 51종의 G단백질결합수용체(GPCR)의 상호작용을 생화학적으로 분석한 후 통합하여 무선 신경망 지도를 완성했다. 무선 신경망은 하나의 뉴런에서 방출된 신경펩티드가 접합 부위 없이 멀리 떨어진 뉴런의 GPCR에 결합하며 신호가 전달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신경펩티드의 종류에 따라 결합된 수용체와 발현된 유전자를 통합 분석하여 신경펩티드로 매개된 무선 신경망 지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된 최초의 무선 신경망 지도는 302개 뉴런 사이에서 일어나는 3만1,479가지의 신경펩티드 상호작용을 담고 있으며, 각 신경펩티드와 수용체가 결합하는 위치 정보를 제공한다. 무선 신경망은 화학적 시냅스로 연결망 대비 10배 이상 조밀하고, 탈중앙화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핵심 뉴런(허브) 중심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시냅스와 다른 정보처리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그간 화학적 시냅스에 국한됐던 신경계의 신호전달 연구의 관점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가 섭식 장애, 강박 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광범위한 신경 정신 질환뿐 아니라 감정과 정신 상태의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연구진은 무선 신경망이 유선 신경망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유기체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를 규명해 나갈 계획이다. 셰퍼 박사는 “이번에 밝혀진 무선 신경망이 더 큰 뇌를 가진 동물의 무선 신경망을 지도화하는 데 적용 가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타 연구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물고기, 문어, 쥐 그리고 인간 등 동물에서 무선 신경망 네트워크를 지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예슬 리포터 ㅣ 저작권자 2023.12.28 ⓒ ScienceTimes(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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