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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세기 과학혁신 일으킨 父子 등록일 2018.01.05 11:50
글쓴이 에디스젠 조회 491

지난 2006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로저 콘버그 교수는 진핵생물의 유전정보가 복사되는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처음 밝혀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 소식을 통보받은 직후 콘버그 교수는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숭배자였고 아버지는 나의 연구보다 훨씬 앞선 선구적인 연구를 해왔다”며 부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

그가 이런 발표를 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아서 콘버그가 바로 그의 부친이기 때문이다. 47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노벨상을 수상한 사례는 콘버그가 처음이 아니다. 조셉 톰슨(1906년 물리학상)과 조지 톰슨(1937년 물리학상), 닐스 보어(1922년 물리학상)와 아게 보어(1975년 물리학상), 카를 시그반(1924년 물리학상)과 카이 시그반(1981년 물리학상), H 폰 오일러-헬핀(1929년 화학상)과 울프 폰 오일러(1970년 생리의학상) 등이 모두 아버지가 먼저 받고 뒤에 아들이 노벨상을 받은 경우다.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아버지 헨리 브래그(왼쪽)와 아들 로렌스 브래그. ⓒ 노벨상위원회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아버지 헨리 브래그(왼쪽)와 아들 로렌스 브래그. ⓒ 노벨상위원회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해에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공동으로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월리엄 헨리 브래그와 그의 아들 월리엄 로렌스 브래그가 그 주인공. 이들은 X-선에 의한 결정 구조의 해석으로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첫 사례이자 부자(父子) 공동 수상의 유일한 사례인 셈이다.

아들인 로렌스 브래그는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 나이가 25세였다. 이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로서는 역대 최연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노벨상 전체를 통틀어 최연소 수상자는 2014년 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이프자이다. 파키스탄 여성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위해 투쟁한 공로로 세상에 알려진 말랄라는 노벨상을 받을 당시 17세였다.

현대 생명과학 태동에 큰 역할

브래그 부자가 탄생시킨 X-선 결정학은 20세기 최고의 과학 혁신 중 하나로 꼽힌다. 물리, 화학, 생물학, 재료과학, 광물학, 의약학 등의 분야에서 혁명적인 발견들을 생산한 것은 물론 이와 연관된 연구로 나온 노벨상만 해도 20여 회가 넘는다. 만약 X-선 결정학이 없었다면 분자생물학이나 구조생물학 같은 현대의 생명과학은 태동할 수 없었다.

브래그 부자가 X-선 결정학을 탄생시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12년 여름 휴가지로 날아든 한 통의 편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인 헨리 브래그가 받은 그 편지에는 독일의 막스 폰 라우에 연구진이 발견한 X-선 회절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1895년 벨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이후 과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X-선이 입자인지 아니면 파동인지를 규명하는 일이었다. 막스 폰 라우에는 황산구리 및 섬아연광 결정들을 사용해 X-선을 회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곧 X선이 파동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회절은 파동이 장애물이나 좁은 틈을 통과할 때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23세에 호주 애들레이드대학 교수가 된 헨리 브래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X-선 장치로 6살 때 자전거를 타다 팔꿈치를 다친 아들 로렌스의 X-선 사진을 촬영할 만큼 X-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호주에서 태어난 아들 로렌스 브래그는 15세 때 부친이 근무하던 애들레이드대학에 입학해 1908년에 졸업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가 영국의 리즈대학 교수로 임용되자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조국인 영국으로 돌아와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 그의 전공은 수학이었지만 도중에 전공을 물리로 바꾸었다. 21세 때인 1911년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캐번디시연구소에 들어간 로렌스는 다음해 여름 아버지와 함께 휴가를 갔다가 라우에의 X-선 회절 연구결과를 전해 들었다. 그 편지를 받기 전까지 아버지인 헨리는 X-선의 입자설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로렌스는 어느 날 산책을 하던 중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라우에가 촬영한 X-선 회절 패턴을 이용하면 물질의 원자 배치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X선 회절 데이터로 물질의 원자 구조 밝혀

즉, 그는 결정을 이루는 원자가 일렬로 배열된 면에 X-선이 부딪쳐 반사돼 생긴 간섭무늬가 X-선 회절 패턴일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X-선 회절 패턴을 잘 분석하면 역으로 결정을 이루는 원자의 구조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로렌스는 그 같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섬아연광의 결정 구조를 밝힌 ‘결정에 의한 짧은 전자기파의 회절’이란 논문을 그해 11월 11일 케임브리지철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결정격자로부터 회절되어 나온 X-선이 나타나는 조건에 관한 수식을 만들었다.

오늘날 일반물리학 교재에도 소재되어 있는 ‘브래그의 법칙’ 또는 ‘브래그 공식’으로 불리는 수식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아버지 헨리 브래그는 원하는 세기의 단색광을 산출할 수 있는 새로운 X-선 분광계를 만들고 그에 대한 논문을 1913년 1월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 같은 공로로 브래그 부자는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X선 회절을 발견한 막스 폰 라우에는 19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로렌스는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염화나트륨, 다이아몬드, 흑연 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 헨리 브래그는 X-선 회절 데이터로 원자의 전자 분포를 알 수 있다고 예측했으며, 아들인 로렌스는 점점 더 복잡한 결정의 원자 구조를 밝힘으로써 아버지의 예측을 입증해 보였다.

1938년 캐번디시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한 로렌스는 휘하 연구원들의 연구를 지원해 분자생물학의 출현을 주도하기도 했다.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밝힌 존 켄드루,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힌 막스 페루츠,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이 모두 그가 연구소 소장으로 있을 때 일한 연구원으로서, 이들 역시 모두 노벨상을 수상했다. 가족들과 함께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 온화한 성품의 로렌스 브래그는 1971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브릭